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사와 히데유키 (문단 편집) == 여담 == 두터운 바둑을 가장 잘 안다고 평가받았다. 두터움을 이용하여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이는 당시 일본 바둑의 주류 기풍하고 반대였으며 이러한 호쾌한 바둑으로 골수팬들이 많았다. 세부적인 그림보단 큰 그림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는데, 이처럼 무모하고 공격적인 기풍을 보며 후지사와의 스승은 '''"이놈의 바둑은 통나무를 휘두르는 것 같은데!"'''라고 평했다. 하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대국을 놓칠 때도 많았으나 날카로운 착상을 선보여 '화려한 히데유키'라고도 불렸다. '초반 50수까지는 일본 제일' 이라고 부를 정도로 포석에 매우 강했으며, 한때 일본기원에서는 초·중반 대국을 검토하여 결론이 나지 않는 부분은 "히데유키 선생님께 여쭤보자." 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조훈현]]의 스승 중의 한 명으로 알려졌다. 조훈현이 세고에 겐사쿠 밑에서 바둑을 수학하던 중 후지사와의 사무실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는데, 조훈현과의 대국에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챈 것이 계기. 세고에 겐사쿠 휘하에서 바둑을 수학하면서도 틈틈이 후지사와의 연구회에 참가하는 등 가르침을 받았으며 세고에 겐사쿠를 정신적인 스승, 후지사와를 바둑판 위의 스승이라 표현했다. 이때 일어난 일화가 하나 있다. 연구소의 선배였던 아베 요시테루(安倍吉輝)가 내기 바둑을 제안하자 조훈현은 이를 거절했으나, 후지사와 본인이 이를 부추긴 것. 제법 차이 나는 단수임에도 바둑은 압승하긴 했지만, 후지사와가 이를 자랑스레 여겨 동네방네 퍼뜨린 바람에 세고에의 귀에까지 소식이 들어가 조훈현은 잠시 파문을 당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결국 후지사와가 손발이 닳도록 빌고 빌어서야 파문은 2주 만에 철회되었긴 했다. 자세한 내용은 [[조훈현]] 문서 참조. 후지사와는 빚을 많이 졌는데, 제2회 기성전에서 [[가토 마사오]]에게 1승 3패로 몰리자 제5국을 앞두고 '''졌을 때 목을 매달기 위해''' 좋은 나무를 찾은 다음 대국장으로 향했다. 이 대국에서 후지사와는 2시간 57분을 장고한 끝에 둔 수로 상대의 대마를 잡으며 이겨 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한다. 기성전을 6연패 하는 동안 빚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어갔는데 "최고의 한 수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어서 빚도 여자도 무섭지 않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또한 조훈현의 회고로는 빚 때문에 '후지사와 연구회'의 사무실이 하도 자주 바뀌어 자기를 비롯한 제자들이 그때마다 사무실 집기를 들어다 나르느라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으로 "[[조훈현|훈현이]]가 보고 싶다"며 위스키 한 병만 들고 불쑥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다가 무작정 첫 새벽 비행기를 잡아타고 김포공항에 내려 연락한 것. 청계천 서린호텔에서 3일 내내 나가지 않고 내내 조훈현의 그간 기보들을 검토/연구하고 속기 바둑을 두었다고. 물론 그 3일 내내 술을 못하는 조훈현은 물을, 후지사와 선생은 술을 달달하게 드셨다고 한다(...). 그러고서 "네 바둑이 썩었나 보러 왔는데 안 썩어서 다행이다. 돌아간다."라고 하고 갔다고 한다.[* 이광구의 바둑 이야기에 보면, 당시 후지사와가 머물던 호텔방에서 조훈현 사범이 안마를 하는 모습 때문에 조 사범이 사대주의적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이광구는 '세상 어느 스승이 제자 보고 싶다면서 그렇게 찾아오냐.' 하면서 둘 사이의 각별한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의 입방아라고 얘기했다.] 그의 방에 있는 바둑판은 평범한 접이식이라서 관계자들이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일반적인 바둑기사들은 비싸고 좋은 바둑판 하나 정도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고에 겐사쿠가 고고하고 엄격한 성격이었다면, 후지사와는 상당히 호쾌하고 괴짜스러운 스타일. 엄청나게 술과 여자와 도박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조훈현 九단이 [[방송]]에서 밝히기로는, 슈코를 만나러 갔을 때 [[집#s-1]]에서 양 옆에 여자를 하나씩 끼고 앉아 맞이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의 대국료와 우승 상금은 대부분 유흥비에 사용되었다. 그의 말버릇 중 하나는 '나는 1년에 네 번만 이기면 된다' 였는데, 기성전 타이틀 방어전이 7전 4승제였기 때문이다. 타이틀 방어전이 치러지기 2개월 전부터 술과 여자를 딱 끊고 바둑에 집중한 뒤 기성전 우승 상금을 받으면 10개월 동안 노는 식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 기성전은 국제 대회와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상금(4500만 엔 정액[* 기성전 상금은 처음 3200만 엔으로 결정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인상돼 현재는 4500만 엔이다. 현재 기준으로도 3200만 엔은 큰 돈이지만, 후지사와가 기성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시절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다. 2023년 기준으로 현재에도 개인 기전에서 일본 남자 기성전보다 큰 돈이 걸린 기전은 단 한 군데도 없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6연속 기성을 차지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 기성전 우승 상금으로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술에 취해서 "이 놈의 비행기!! 추락해버려라!!" 라고 주정을 부리기도 했다. 이는 당시 슈코가 정말로 막대한 빚에 시달렸고, 기성전 대국 상황은 빚쟁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이 됐으며, 빚쟁이들은 당연히 슈코가 우승하면 딴 데(노름) 돈 쓰기 전에 빚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우승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즉시 어마어마한 빚독촉을 하였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